dream

[파판14/테미히카]현대au 1

.............. 2023. 6. 15. 22:00

드림 교류회에 가져갈 소설입니다.

-------------------------------------------------------

 

"부탁한 내용을 찾아보았어요. 지금 현재 부족한 봉사시간이…대략 50시간 정도 되네요."

전학온 아모로트 학교는 에스컬레이터 전형이기 때문에 입학시험을 치루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다만 한가지 간과한 사항이 있었는데, 이 학교는 명문학교이기 때문에 유난히 봉사시간 이수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는 점이었다.

일반 학교와 학년당 시간이 50시간 정도 차이가 난다니…이 쯤 되면 공부하러 학교에 다니는 게 아니지 않나?

"이 학교는 초등학교부터 연계된 학교니까요. 초등학생은 연간 5~8시간 정도 봉사시간을 이수하지만 이 곳은 10시간 정도는 되요."

"휴…그래도 50시간 정도면 2년 안에 어떻게든 채울 수 있겠네요."

"어머? 다른 학생보다 부족한 시간이 50시간이라는 거에요. 거기에 추가로 50시간을 2년동안 이수해야 하는 걸요. 3학년때도 봉사활동을 하는 건 상관없지만, 보통 그 즈음엔 다들 졸업시험이나 논문 쓰기로 바쁘거든요."

그러니까 2년 안에 100시간을 이수해야 한다는 거죠. 베네스 선생님의 말에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질 뻔했다.

100시간…?! 그게 무슨 뉘 집 똥개 이름이라도 되나! 아무리 명문 학교라지만 봉사에 대한 집요함이 도를 넘었다.

이대로 가다간 꼼짝없이 졸업생 시기에도 부족한 봉사시간을 채우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절망스러웠다. 거의 쫓겨나듯 오게 된 전학. 그마저도 당장 자취할 돈이 없어 친척인 베네스 선생님 집에 주소지를 옮겨 겨우 통학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은 전 학교에 있었던 일은 신경쓰지 말고, 자취방도 천천히 알아보라고 해주셨지만…. 16살이나 먹었는데 자신의 집안 사정을 모르는 학생이 어디있겠는가. 철없이 살 수 있는 풍족한 머저리라면 가능하지만 가난과 서민의 사이에 걸쳐있는 나는 모를 수 없었다. 어린 시절 기억보다 좁아져가는 집안. 제철 야채나 과일은 눈에띄게 밥상 위에 줄어들고 인스턴트가 올라온다. 부모님이 입고있던 옷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누가봐도 집안 기둥이 휘어가고 있단 증거인데. 눈 앞에 징거를 무시할 정도로 사리가 어둡진 않았다.

"하………."

"걱정말아요, 해결방법까지 찾아보고 알려준 거에요."

"저, 정말요?!"

역시나 고민의 해결사, 베네스 이모. 실의에 빠진 조카를 바로 구원해주셨다.

이모는 어릴적부터 집안의 자랑이었다. 예쁘고, 상냥하며 똑똑하고, 뭐든지 해내는 수재. 좀 괴짜같은 면이 있어 가끔 사고를 칠 때도 있었지만, 원래 머리 좋은 애들은 나사가 빠진 곳이 있다며 조부모는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물론 나도 항상 내게 친절히 대해주는 이모를 맨날 쫓아다니며 놀아달라고 칭얼거리곤 했다. 이모는 그야말로 아젬 가문의 자랑스러운 장녀이자 나의 은인이었다.

"나마에가 유난히 다른 학생들과 시간이 차이가 나는 건, 봉사과목을 듣지 않아서에요. 이 학교는 아이들이 중간에 수강철회를 할 수 있으니까, 나중에 시간을 못 채워서 졸업을 못하는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강의를 이수하면 추가로 5시간씩 더 주거든요. 1학년때부터 세어보면 대략 45시간…딱 당신이 부족한 숫자죠."

그런 꼼수를 쓰고 있었구나. 역시나, 아무리 모범생과 우등생이 득실거리는 학교라 해도 그 정신나간 숫자는 학생이 채울 수 없는 시간이었다. 휴,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긴장이 풀리자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봉사과목은 학생회에 소속된 사람은 들을 수 없어요. 매주마다 학생회 임원들은 회의를 하는데 그 시간이 봉사과목 시간과 겹치거든요. 그리고 추가시간을 얻기 위해선 강의를 고등학교 2학년까지 들을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학생회 아이들은 입부하자마자 봉사시간을 50시간 받는답니다. 중복되지 않는 한에서요."

"그럼……"

"네! 나마에도 학생회에 들면 바로 부족한 봉사시간을 채울 수 있어요!"

"어……그런데, 학생회는 지금도 뽑나요?"

그렇게 이득이 있는 학생 활동이면 지원자가 적을리 없다. 이상한 소문 때문에 내쫓겨난 낯선 전학생을 요 고지식한 학교가 잘도 받아줄까? 전혀 아닐 것 같은데. 그러나 내 걱정을 꿰뚫었다는 듯 베네스 이모는 싱긋 웃었다.

"학생회 멤버는 그 소속인의 추천으로도 될 수 있어요. 마침 지금 시간이면 음악실에 있을 것 같은데, 한번 만나볼래요?"

처음보는…사람한테 다짜고짜 학생회에 넣어달라고 부탁하라는…뜻인가요? 그러나 베네스 이모에게 되묻기도 전에 이모는 봉사상담부에 가봐야 한다며 교무실을 그대로 떠나버렸다. 지도교사는 바쁜걸까. 그런것 치곤 자리를 피하는 것 처럼 보였는데…. 뭐 아무렴 어때. 앉아만 있어봤자 일은 해결되지 않는다. 시작이 반이라고 일단 움직이고 봐야 하는 법. 혹시 몰라, 운 좋게도 학생회 결원이 있어 입부자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나는 최대한 근심을 집어던지고 음악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음악실은 동관 3층에 있었다. 3층은 거의 졸업생들 전용이라 1학년인 내가 들어가기엔 많이 부담스러운 공간이다. 그러나 2학기를 막 맞이한 3학년 교실은 한산했다. 이게 베네스 이모께 들은 모습인가. 각 학생들은 원하는 과에 맞춰 졸업시험이나 작품, 논문을 쓰느라 학교에 거의 오지 못한다고…했던 것 같다. 1학년 음악 수업이 왜 2학기에 몰려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3학년 눈치 보지 말고 음악실을 마음껏 사용하라는 뜻이였구나.

당당한 걸음으로 음악실을 열자 벽에 잔뜩 걸린 상패가 반겨주었다. 중앙에 놓인 드럼과 심벌즈를 지나면 창문 옆에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앉아있는 백발의 소년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안녕."

샛별처럼 파란 눈이 마주치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섬뜩할 정도로 이목구비가 단정한 얼굴이다. 부드러운 눈썹과 함께 휘어진 눈매가 보는 이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저렇게 예쁘게 생긴 남자애가 실제하는 구나. 연예인을 직접 보면 이런 기분일까, 생각하며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햇빛을 받은 흰 피부가 무척이나 매끄러워 보인다. 남자애는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눈을 커다랗게 뜨곤 입술을 한껏 올렸다. 새파랗게 반짝이는 눈동자가 꼭 빛이 뚜렷한 보석같았다. 그는 그대로 다가오더니 내 손을 양손으로 붙잡고는 큰 눈을 접으며 웃었다. 웃는 상은 꼭 강아지 같은게 무척 귀엽다. 나는 귀신에게 홀린 것 처럼 눈을 떼지 못하고 손을 붙잡히고 말았다.

"드디어 만났구나, 보고싶었어. 그동안――"

"아………그, 누, 누구세요…?"

잘생긴 놈 처음보냐? 부끄러운 짓 그만 하고 정신 차려라. 나는 머리를 뒤 흔드며 그제서야 남자애에게 말을 걸었다.

유해보이는 얼굴은 어림잡아 동갑이나 연하로 보이지만…외모로 사람의 나이를 판단할 수야 없지, 선배일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학생회에 들어가게 해달라며 잘 보여야 하는 인물에게 버릇없게 굴 순 없으니, 당연히 여기선 존댓말이다!

"저, 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누구냐면―"

"………그렇구나, 날 기억 못하는 건가…"

학생회 인물로 보이는 소년은 상심한건지 고개를 숙였다. 언뜻 스쳐간 얼굴이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 같다.

뭐지? 아까 중얼거리는 말도 그렇고 날 아는 사람인가? 하지만 이런 미소년을 내가 잊어버렸을리 없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응? 어…그 쪽이 베네스 선생님이 말씀하신 학생회 소속 인거…죠?"

"아…맞아. 학생회 부회장인 1학년, 엘리디부스라고 해. 편하게 테미스라고 불러."

 

엘리디부스는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동갑이구나, 어려보이는 얼굴과 다르게 묘하게 어른스러운 태도때문에 선배가 아닌가 싶었다. 어쨌든 이름으로 부르라고 배려해주는 건 고맙지만…이런 미소년을 다짜고짜 이름으로 부르며 친한척 굴고 싶진 않다. 나는 너스레 괜찮다고 거절하며 곧이 곧대로 그를 성으로 불렀다.

 

"베네스선생님이 도울 일이 있을거래서 왔는데, 무슨 일이야?"

"아………정말 이름으로 불러도 상관없는데."

 

야, 지금 그게 중요하냐고. 물어본건 분명히 용건인데 어째서인지 미소년은 이름을 고집하며 내 눈치를 슬쩍 보고 있었다. 귀엽게 데굴, 올라간 눈동자가 꼭 토끼처럼 귀여운게…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엘리디부스에게 되물었다.

 

"엘리디부스, 학생회를 도울 일이라는 게, 뭘까?"

"1학년 에리쿠토니오스를 아니? 그의 집을 방문하는 거야. 꽤나 학교에 오지 않고 있거든."

"아……에리쿠토니오스라…"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이사장…라하브레아의 아들이었던가? 언젠가 애들이 떠들어대던 이야깃속에서 나온 단어인 듯 했다. 학교에 오지 않는다라…학생회가 찾아갈 정도면 불량학생이라기보단 등교거부 학생인건가.

 

"그 애 집에 가면 되는거야?"

"응, 수업 필기물과 기타 프린트물 같은 거. 우리와 상담하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찾으러 갈 때마다 만나주지 않네."

 

엘리디부스는 정말 아쉬운건지 쓴 웃음을 지으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가만보자…이거, 기회 아냐? 만약 에리쿠토니오스를 방 밖에 나오게 하면, 적어도 엘리디부스와 얘기할 수 있도록 도우면 학생회에 눈도장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좋은 인상은 남길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나와 엘리디부스는 에리쿠토니오스의 집으로 향했다.

훗날, 우리의 만남이 어떤 날개짓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른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