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주까진 아니고 귀찮아서 매일 게임하면서 넣는 이름을 그대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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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아쳐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아쳐를 볼 때마다 이상한 생각이 든다. 아쳐는 나를 마스터로 생각해주고 있을까. 서번트로 소환 된 이상 마스터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감정을 내게 가지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런 거추장 스러운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내가 그에게 반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이래저래 일이 많았군...랜서뿐만 아니라 멜트리리스의 건도 있고 말야."
"응."
"...마스터?"
"응?"
"내 착각인 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이 쪽을 쳐다보지 않는거 같은데."
"이 쪽?"
"마스터."
아쳐가 타이르듯 나를 부른다. 아이템과 소지금을 확인하고 있던 내 팔을 붙잡고는 똑똑히 자신을 보도록 내 몸을 돌렸다. 이거야 어쩔 수 없이 아쳐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행운이 높아진 대신 근력이 낮아졌다 하여도 서번트와 마술사의 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니까. 저도 모르게 놀라 시선을 돌려 버리면 아쳐의 이마가 이그러지는 것이 얼핏 보였다.
"왜 내 눈을 피하지?"
"아니...보통 그렇게 진하게 쳐다보면 놀라잖아..."
그 말을 내뱉고는 다시 아쳐의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검정색 눈동자 안에 내가 비춰지는 것이 보인다. 웃기지도 않는 내 변명에 무명의 서번트는 "내가 물은 건 최근의 일일텐데." 핵심을 꼭 집으면서 내 팔을 더욱 붙잡았다. 이쯤되면 아파오기 시작하지만, 사내로써 그정도는 참으라고 마초 서번트가 으름장을 내놓을게 뻔하니 가만히 있는다.
"그런 적 없는데."
"내게 거짓말이 통할거라고 생각하는 가?"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라니까. 그리고 그런 일이 있다해도 그거야..."
"그거야?"
"......아쳐가 나보다 키가 훨씬 크니까 목 아파서 안 본거겠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쳐의 얼굴이 더욱 찌푸려진다. 아무래도 화난 거겠지. 히익. 저도 모르게 아쳐에게 잡힌 팔에 통증에 짧은 비명을 질러버린다. 아무리 그래도 서번트가 마스터를 너무 막대하는 거 아닌가? 원래 이 자식이 좀 이런 놈이긴 했지만. 고통과 아쳐에 대한 음울한 마음이 뒤 섞여 목 부근까지 차오른다. 이런걸 욱한다고 하는건가. 저도 모르게 그에게 소리를 지른 것은 괴상한 말이였다.
"그거야......아쳐가 씹스트니까 그렇지!"
"...뭐?"
"엇, 아니 방금껀 미안. 잊어.........라고 말해도 전혀 안듣네, 아쳐."
이번엔 맥이 풀린 듯 아쳐가 내 팔을 놓고는 한숨을 쉰다. 바보취급당한 건가. "마스터, 때때로 네가 무슨 소릴 하는 지는 몰랐지만. 이 정도로 바보일 줄은..." 역시 그렇구나. 어리석은 사람 취급받은 것은 괜시리 화가나지만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말이기 때문에 아무런 반박도 못하고 아쳐를 바라보았다.
아쳐의 눈을 피하게 된 계기를 떠올린다. 하쿠노, 그러니까 내 친구(남자)가 아닌 소녀와 함께 있던 서번트. 그녀를 보호하고 함께 싸우는 남자는 소녀에게 때때로 핀잔을 주고 타박을 굴더라도 자신을 대하는 것 보다 훨씬 상냥한 것이였다. 뿐만 아니라 함께하고 있는 순간의 표정도, 더욱이 행복해 보이는 것이였다. 그야 물론 나도 여자가 좋고, 아니 당연히 좋지만. 어쩜 저렇게 성별에 따라서 행동과 말이 싹 바뀌는 거지. 아쳐의 편애적인 모습에 왠지 모를 질투와 함께 그에 대한 짜증이 몰려왔었다. 나도 아쳐에게 많이 폐를 끼치고 있다곤 생각해도 나름에 애정과 친절을 주고 있는데, 그야 물론 귀엽지 않고 퀴퀴한 사내놈한테 애정을 주고싶지 않겠지. 부드러운 소녀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역경을 함께 거처온 마스터인데, 성별에 상관없이, 그래도 애정을 줘서는 안 되는 것인가?
린과 마력공급을 했을 때도 그렇다. 솔직히 그 땐 그에게 믿음만 있어서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마스터인 나하고 할 생각을 안하고 린을 고르다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해도 보통은 마스터를 먼저 생각하지 않냐고. 그리고 하고 난 뒤 그 말과 표정은 무엇이더냐. 린이 적극적으로 나서니까 그리 좋더냐. 아쳐의 이상형이 린 처럼 기세고 귀여운 여자아이란 건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마스터?"
"어? 엇......"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진 몰라도, 점점 우중충한 기운이 도는데."
"......아쳐..."
"무슨 일이지?"
기운 없이 그를 불러보면 앞엔 자신을 걱정하는 듯 표정을 바꾸는 서번트가 보인다. 이런 얼굴을 보면 그에게 저도 모르게 두근 거리지만, 그 표정을 다른 여성에게도 보여줬을 거란 생각을 하자 역시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다.
"......세이버한테 시집이라도 갈 걸 그랬나..."
"마, 마스터?!"
"요즘들어 유우키가 아쳐를 안 보는 거 같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시선을 안 맞춘다는 거래. 그게 뭐? 그래도 싸움은 잘 하고 있고, 대화도 잘 하고 있잖아."
"사회에선 눈 스킨쉽또한 신용과 애정의 표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에서 눈맞춤의 빈도가 떨어진다면 신용이 떨어진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죠."
"저, 정말인가?!"
"그치만, 소우마씨 평소랑 전혀 다른게 없는 걸요? 평소처럼 아쳐씨 상태가 나빠지면 바로 걱정도 하고..."
"이게 다 잡종 네 놈이 편식을 해서 그런 것이다."
길가메쉬의 말에 시끌벅적하던 학생회는 정적을 맞이했다. 편식이라. 자신이 좋아하는 싫어하는 음식을 가리는 행위를 말하는 것인가. "바보같은 놈, 맛만 좋으면 될 것을. 뭐, 어차피 네 놈은 꽉막힌 놈이니 자신이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길...그게 무슨 뜻이야?"
"그걸 알려주면 재미가 있겠느냐? 하쿠노. 뭐, 요컨대 나 처럼 행동하라는 거다."
"아쳐가 길처럼 변하면 유우키는 울 걸."
"뭐라고?! 잡종, 요즘 간이 아주 커졌구나?"
"죄송합니다..."
"...뭐, 난 대충 무슨 소리인진 알거 같지만."
험악한 길가메쉬와 하쿠노의 만담속에 린이 말을 꺼내었다. 얕은 한숨을 쉬고는 아쳐를 보며 "걱정할거 없어. 서번트와 마스터간의 신뢰가 깨질일은 없으니까. 아쳐가 인간적으로 윳키를 걱정하고 있는게 아니라면, 그냥 냅둬도 되는 일이야." 긴 머리카락을 목 뒤로 넘겼다. 여전히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하쿠노와 라니를 냅두고 사쿠라 또한 "아...그런거였군요." 린에게 긍정을 하였다.
"잡종...네 놈의 이해력은 덜떨어진 놈 답게 같잖지도 않구나."
"엣, 뭐야, 나 지금 왜 길한테 모욕받는 거야?"
"선배는 그런 쪽으론 감이 떨어지니까요."
"...그런 일이군요. 저도 알아들었습니다."
"하긴 저 초식계 동물 애호 남자애가 이런 걸 알리 없지."
"쯧...하찮구나, 하쿠노여. 친우의 고민 조차 이해 못하는 네 놈을 보니 실로 웃음이 나는 군! 하하하!"
"나 왜 비웃음 당하는 거야?! 것보다 라니도 이해한 거야?!"
소우마 유우키의 이상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하쿠노가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알몸으로 자고있는 자신의 왕의 품에 안겨있을 때 였다.
자, 그래서.
자신의 마스터의 이상의 원인을 왠지 모르게 깨달은 아쳐는 마이룸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유우키가 자신을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인가? 동성애 자체는 아쳐 또한 그리 꽉 막힌 인간은 아니기 때문에 이해하고 있었다. 본인이 거기에 흥미가 없었던 것 뿐. 아주 오래전의 기억이라,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이지만. 자신이 인간이던 시절, 동료중에서도 동성애자는 뭇 되었으니.
세계 여러나라를 누비고, 많은 사람을 만나던 터라 아쳐 또한 동성에게 고백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때의 감정은 당혹함, 왠지 모른 미안함. 아주 약간의 저항감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마스터의 마음을 떠올리는 감정은. 잘 모르겠다. 저항감이 크게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끌리는 것은 아니였다.
문 앞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아주 꼴사나운 것이기 때문에 아쳐는 결국 마이룸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미닫이 문을 열고 "마스터, 안에 있는가?" 들어가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흑발의 소년이 붉은 여성에게 안겨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붉은, 여성?
"호오, 네 놈이 바로 이 소년의 서번트인겐가? 아주 부러운 남자이군."
"아, 아쳐어..."
"?! 네놈, 도대체 누구냐?!"
자신의 마스터를 여성에게 보호하려고 싶지만, 그는 이미 그 여성에게 폭 안겨있는 꼴이였다. 아쳐의 쌍검을 들고 여성에게 위협을 하지만, 그녀는 콧방귀조차 뀌지 않고 고양이같은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서번트 세이버, 소년의 부름에 응하여 이곳에 현세하게 되었다."
"부름...? 마스터, 도대체 무슨짓을."
"아냐 잠깐! 나 진짜 아무짓도 안했어!"
"무슨 소릴 하는 가! 소자여! 소자가 어제 '세이버에게 시집이라도 갈 걸...' 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어젯밤(솔직히 이 세계에서 시간의 흐름은 없지만.) 자신의 마스터가 내뱉었던 터무니 없는 말을, 여성은 홀로 주장하며 소년을 꼬옥 안았다. 그 때 아쳐는 그 세이버가, 학생회장의 서번트 '가웨인' 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소년이 내뱉었던 그 세이버가 바로 이 여성이란 말인가.
"아니, 솔직히 적밥폐하를 부른 건 맞긴 한데...진짜 말이 이뤄질 줄은,"
"주자의 뜨거운 고백에 짐은 답하고 싶었다! 이렇게 귀여운 소년이면 짐은 두말할 것도 없지! 주자여, 짐의 비가 되겠느냐?"
"아니, 폐하, 저기, 저 남잔 데,"
"그대같은 영혼의 소유자면 성별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 그대는 비가 좋느냐? 왕이 좋느냐? 마음이 따르는 대로 고르도록 하여라!"
"......그거, 혹시, 내가 여자든 남자든...날 좋아해주겠다는 거?"
"물론이고 말고!"
붉은 여성, 세이버의 터무니 없는 말에 아쳐는 그녀를 말릴려고 하였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의 마스터가 볼을 붉히며 "엣." 하고는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였으니. 마스터의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아쳐는 저도 모르게 칼을 떨어트릴 뻔 하였다. 소년의 수줍은 모습을 세이버는 그저 귀엽다며 애지중지 하고 있었다.
"저...정말로?"
"왕은 거짓말 따위 하지 않는다. 그대같은 강인한 사람이라면 그 누가 비로 삼고 싶지 않겠느냐."
"아니...저...그런 강렬한 고백은 처음 들어서..."
소년이 손으로 입을 가리곤 부끄럼을 떨고 있다. 저것은 자신이 알고 있던 마스터가 지을 수 있는 표정이 아니다. 언제나 엉뚱한 말을 하곤, 수치라곤 없던 소년이 지금은 저리도 한껏 쑥스러워 하고 있다니.
"소자여, 짐의 고백을 받겠느냐?"
"......저기...그...나도 날 그렇게 좋아해주는 사람이면..."
"마스터는 못 넘긴다!!!"
정신을 놓고 가만히 그 둘의 열렬한 사랑의 대사를 보고 있던 중, 아쳐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곤 마스터에게 다가갔다. 세이버에게 안겨있는 소년을 자신의 품에 감추곤 그녀를 향해 눈초리를 주면, 소녀 또한 아쳐를 향해 눈을 부릅 떴다.
"마스터! 정신 차려라. 저런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에게 함부로 휘둘려져서는 안 돼! 애초에 넌 너무 헛점이 많아, 정말이지 내가 눈을 뗄 수가."
"하하! 정말이지 들어줄 수 가 없는 잔소리구나! 주자는 계속 저걸 듣고 지냈는가? 참으로 딱하도다. 그러고보니 주자여,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소, 소우마 유우키라고 합니다..."
"마스터어! 정신차려! 그렇게 쉽게 답하지 마! 정말이지! 넌 지금 몹쓸 마술에 걸려있는 건가?! 왜 눈에서 하트가 나오는 거야!"
"이미 결정은 났다! 소자여, 저 남자는 이만 끝내고 짐을 맞이 하여라!"
지금껏 본 적 없을 정도로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마스터가 세이버를 바라본다. 저건 이미 홀려있는 것이 분명하다. 갑자기 등장한 세이버 탓에 마스터에게 버림받을 지도 모르는 아쳐는 화가났다. 지금까지 마스터와 겪어온 고난은, 고작 저런 말 쪼가리에 버려지는 것이였는 가. 그 때 느꼈던 믿음도, 우정도, 애정도, 전부 물거품이 되는 것인가. 자신의 마스터는 고작 아쳐를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것인가.
"그건 안 돼! 마스터가 좋아하는 건 바로 나란 말이다!"
자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스터가 아쳐를 바라보았다. 그 황당하기 짝이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아쳐의 말이 사실인 듯 얼굴을 뻘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말을 더듬으며 "뭐!뭔 소리야?!" 자신의 서번트에게 대꾸를 하지만 마스터의 그 얼굴을 본 이상 아쳐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술술 말을 꺼내었다.
"나하고 눈을 계속 마주치지 않은 것도, 내게 질투하고 있어서가 아닌가?"
"멜트 리리스에게 구애받은 후로, 아니 그 보다 더 훨씬 전인가. 키시나미 하쿠노, 그녀와 있던 또 다른 나를 보았던 이후인거 같군. 그녀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모습에 화가난 건가. 마스터."
"린하고 마력공급을 한 후에도, 그 때 마스터의 표정이 별로 안 좋았던거 같군. 기억난다. 그거 때문에 화가나서 날 보지도 않은 거 아닌가? 유우키."
아쳐의 눈사태 마냥 쏟아지는 말에 세이버와 소년은 가만히 있었다. 조금은 뿌뜻 했는지 내 말이 맞지? 하며 그가 마스터에게 대답을 물었다. 하지만 싸늘한 표정의 소년은 아쳐의 득의양양한 얼굴에서 눈을 떼었고 세이버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아쳐를 바라보았다.
"...네 놈, 그걸 다 알면서도 가만히 있었던 게냐?"
"아니, 그런 일은,"
"됐다. 소자여, 그대도 정말 가련하구나. 저런 되 먹지도 못한 남자에게 반하여, 자신의 마음을 농락 당하고...그대가 받은 상처, 짐이 다 헤아려 주고 싶구나."
"그러게, 아쳐,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나한테 린하고 상성이 좋다는 둥 별 소릴 했던 거네."
"마스터, 난 그런 게 아니라"
"됐어."
지금 껏 본 적 없는 차가운 눈빛으로 마스터가 자신을 바라보았다. 제 딴에는 마스터의 마음을 헤아린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상대방이 듣기엔 그저 알면서도 일부러 마스터를 간보았다는 뜻으로 들리는 것이였다. 세이버는 고개를 저으며 "하여간 근육덩어리인 남자들은 어쩔 수 없군." 아쳐에게 폭언을 날려댔다. 마스터와 세이버의 오해에 아쳐는 식은 땀을 흘리며 아니라고 큰 소리를 지었지만 소년은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미안, 세이버."
"마, 마스터?"
"저렇게 짜증나고 말하는 것도 버터 바른 거 마냥 번지르르하고 느끼하고 근력도 낮아서 데미지는 안먹히는 주제에 내구는 약해서 맨날 죽기 바쁘고 스킬을 쓰려고 하면 투영횟수가 필요해서 상대방의 가드마다 투영하고 보구도 데미지 효과 없고 옷 입는 센스도 떨어지는 데다가, 성차별은 엄청나게 심하는 말도 못한 마초지만."
"마스터? 아무리 그래도 말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래도, 그래도 꽤 상냥하고 이런 날 마스터로 인정해주고, 내가 믿을 수 있고, 무엇보다...내가 좋아하는 남자니까 말야."
소년이 세이버를 향해 얕은 미소를 지으면 그녀는 납득한 듯 "그렇군." 소년을 품에서 떼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이버가 아쳐를 향해 말했다.
"거기, 이 가련하고 강인하고 귀여운 마스터에게 험악한 말만 내뱉는 서번트여."
"뭔가 오해가 있는거 같은데, 난 거기까진..."
"짐은 마음에 들지 않느나, 어쩔 수 없지. 주자가 그대를 원한다면야. 꽃은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어야 아름다운 법. 비록 그 사람이 짐이 아닌게 아쉽지만, 내 특별히 그대에게 양보하겠네."
아쳐는 약간 떨떠름한듯 말끝을 흐렸지만 똑똑히 알겠다는 대답을 하였다. "주자여, 짧은 기간이였지만 만나서 즐거웠네. 짐의 마스터도 그대와 같은 사람이면 좋겠군." 사라지는 듯, 그녀의 주변에서 푸른 색 빛이 맴돌았고, 세이버는 소년의 손등에 작별의 입맞춤을 맞추었다. 아쳐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무어라 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사라지는 것은 분명하였으니 더 이상 방해를 하지 않았다.
"그럼 잘있게나, 유우키. 될 수 있다면 또 보았으면 하는 군."
귀여운 미소를 짓는 소녀는 점차 옅어지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마이룸에 남아 있는 것은 자신의 마스터와 그 일뿐. 한동안 조용한 정적을 헤메고 있던 것을 깬 건, 바로 아쳐의 목소리였다.
"...마스터."
"응."
"아무래도 BB의 짓인 거 같군, 그 티켓처럼 말이야. 구교사의 대화를 들을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이런 짓을 벌일 줄이야."
"그러네."
무안한듯, 아쳐가 줄줄이 말을 하였지만 마스터는 짧게 그의 말에 대답하고는 가만히 아쳐를 바라보았다. 아까까지 마스터를 봐도 느끼지 못했던 두근거림이, 어째서인지 아쳐는 심장에서 느껴지는 것이였다. 소년의 감정을 상상했을 때 떠올렸던 감정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다갈색 눈동자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묘한 기분이 든다.
자, 그래서. 자신의 마스터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의 입으로 밝혔고. 소년 또한 거기에 시인하였다. 지금 아쳐가 꺼내야 할 말은 무엇인가. 혹은 마스터는 과연 무슨 말을 꺼낼 것인가. 고요히 자신만을 보는 소년에게서 아쳐는 긴장감을 느끼며 입술을 다물었다. 그리고 바로.
"아쳐."
"아, 아아."
"오늘은 밖에서 자."
"알겠......뭐? 뭐라고?"
자신이 상상했던 달콤한 말과는 다르게 마스터는 그를 아까와 같이 차가운 말투로 얘기하였다. "남의 마음을 다 알면서 능욕한 게 말이야, 어지간히 짜증나지 않을 수가 없어서. 한 동안 내가 좋다고 할 때까지 밖에서 자든가 해."
"마, 마스터?!"
"빨리 나가줄래? 나 피곤하거든."
마이룸 밖으로 쫓기게 된 아쳐는 방문을 두드리며 "어째서?!" 마스터에게 물었지만 소년은 가볍게 무시한 체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요즘들어 유우키가 아쳐를 안 보는 거 같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말도 안하는 거래. 싸움은 잘하고 있고, 전략도 얘기하고 있지만..."
"그건 아쳐, 당신이 나쁜 겁니다."
"당연하지 않느냐, 페이커. 이 몸 마저 그 잡종이 가엽다고 여길정도니. 그 붉은 여자에게 넘겼으면 네 놈의 마스터도 행복했을 텐데 말이야."
"잠깐, 다들 그걸 듣고 있었던 건가?!"
"일단은, 만일을 위해서 마이룸을 촬영하고 있으니까요..."
놀란 아쳐에게 사쿠라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였다. 자신의 추태를 만천하에 알린 것과 동시에 마스터에게 받는 미움을 자업자득이라고 단언받다니. 아쳐의 정신력은 이미 한계에 다를 지경이다.
"어라? 아쳐, 어디가 있었나 했더니 먼저 학생회실로 왔었네."
"마, 마스터..."
그리고 이야기의 주인공인 소년이 학생회실의 문을 열고 등장하였다. 평소와 다름 없는, 평온한 목소리로 자신의 서번트에게 말을 거는 것이 조금은 화가 누그러진듯 보였다.
"못봐주겠군. 잡종, 네 놈의 딱하다는 건 짐도 인정하는 격이다. 허나 이 페이커 놈이 늘어지는 추태는 꼴도 보기 싫다. 네 놈이 알아서 달래거나 하여라."
"잠깐, 길!"
"뭐? 나 별로 화같은 거 안났는데? 아, 아쳐. 오늘부터 마이룸에서 같이 자도 돼."
"마스터...!"
아쳐가 울망이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하여간. 더 이상은 처음에 보았던 여유만만한 그의 모습을 볼 수조차 없다. 여성진 멤버들은 그의 꼴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다들 미안. 내가 너무 신경쓰이게 해서. 그래도 이젠 괜찮아."
"뭐, 네 기분이 풀렸으면 되는 거고."
"어, 이제 아쳐 안 좋아할 거니까."
소년의 말 한마디에 학생회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다만 길가메쉬만이 "호오, 재미있군." 하며 입맛을 다실 뿐이였다.
"뭐, 뭐?!?!?!"
"아, 물론 서번트로서 믿고 있고 아쳐 본인한테도 정은 있어. 내가 말하는 건 연애감정이니까. 붉은 세이버를 보고 깨달았는데. 의외로 날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더라고. 그것도 성별에 상관없이. 아쳐는 여자애만 좋아하는 스트레이트니까, 괜히 마음 품어봤자 어차피 소용도 없을거고. 난 내 성별에 상관없이 좋아해줄 사람을 찾을래."
"잠깐! 마스터, 내 대답은?!"
"뭐? 아쳐 마음 말야? 그거야 당연히 처음부터 결정된 거 아냐?"
비웃는 얼굴을 보면, 소년의 화는 절대로 누그러진 것이 아니였다. 오히려 더 돋구아 졌으면 몰라도. 아쳐의 패닉 속에 소년은 "그럼 미궁 탐색을 가볼 까." 하며 자신의 서번트를 두고 학생회실 문을 열어 재꼈다. 소년의 뒤 끝이 심하긴 하지만, 원인은 아쳐에게 있어. 학생회 멤버는 절망에 빠진 아쳐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소년의 화가 그나마 누그러진 건, 미궁탐색이 끝난 후 마이룸에서 아쳐가 무릎을 꿇은 뒤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