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랭이란 여자애가 있었다. 늘 항상 자길 쫓아다니며 서슴없이 애정을 퍼붓던 아이였다. 바쿠고의 퉁명스런 반응에 굴하지 않고 늘 고백을 해왔었다. 그냥 무시하면 저 뜨거운 마음도 금방 식고 말겠지.  그런 생각으로 바쿠고는 얼랭이를 항상 상대하지 않았다.


얼랭이의 대쉬가 어느새 일상의 한 조각이 되었을 무렵, 그는 점차 얼랭이가 자신에게 발길이 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라던 일이였고 드디어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바쿠고 카즈키에게 쫓아다니는 여자애 한명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였으나 귀찮기는 했으니까. 그러나 묘한 감정이 들었다. 아쉽다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마음은 아니였다. 다만 허전함이 있었다.


얼랭아 널 좋아해. 개운치 않은 감이 마음 속을 어지럽히던 나날이였다. 바쿠고는 처음보는 남자애가 얼랭이에게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늘 자신을 향하던 눈은 부끄럼이 서려있었다. 그 탓일까, 얼랭이의 볼도 빨갛게 물들여 있었다. 바쿠고는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그녀가 그런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그 사실에 놀랐다는 것.


사실 당연했다. 얼랭이는 끄떡도 않는 자신에게 마음을 더 보여줘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고, 때문에 바쿠고를 포기했다. 그리고 그 넘치는 사랑은 다른 누군가에게 향하겠지. 실연은 새로운 사랑으로 덮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바쿠고는 자만했다. 아니, 자만이 아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얼랭이의 사랑이 계속 자신을 향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바쿠고는 남학생과 함께 있는 얼랭이를 지나치지 못했다. 우물쭈물 거리며 말을 더듬는 얼랭이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어서 얼랭이는 그 말을 해야했다. 눈 앞에 남학생의 표정은, 얼랭이의 망설임에 점점 기대를 품고 있었다. 어서 빨리 그 불쌍한 마음을 꺼트려 줘야한다. 평소엔 그렇게도 잘만 떠벌리던 한 마디를 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못 내뱉는 거지?


자신은 바쿠고 카츠키를 좋아한다는 그 간단한 말을 왜 저 남자에게 하지 못하는 건가!


마음 속으로 얼랭이의 대답을 예상하던, 아니 바라던 소년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얼랭이의 마음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한 이유.

그건 단순히 자신이 고집을 부린 것 뿐이였다. 사실은 그 마음이 계속 되길 바랬다.


어디에 있든 제일 먼저 자신을 발견해주길 바랬고 작은 보폭으로 자신을 따라오는 그 발소리가 계속 들리길 바랬고 자신만 보면 올라가는 그 입꼬리를 계속 볼 수 있길 바랬다.

바쿠고 카츠키를 좋아하는 얼랭이를 늘 바랬다.


얼랭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남학생에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 떨림은, 자신을 부를 때 느껴지는 것과 비슷했다.

바쿠고는 성큼성큼 얼랭이와 남학생에게 다가갔다. 정확히는 얼랭이를, 똑바로 그녀에게 시선을 맞췄다. 남학생이 무어라 뒤에서 소리를 쳤지만 바쿠고의 몇마디에 그는 줄행랑을 쳤다.

바쿠고가 자신을 보고 있을 줄은 몰랐다는 듯, 얼랭이는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놀랄 땐 그런 표정을 짓는구나. 바쿠고는 그 상황에서 이런 우스운 생각을 하였다. 항상 그가 보았던 표정은 시무룩해 하거나, 들떠있는 표정 뿐이였으니까.


발걸음을 얼랭이에게 옮기면, 그녀는 뒷걸음질 쳤다. 그러면 어느새 그녀의 등에 벽이 닿았다. 딱히 얼랭이를 몰아세울 생각은 없었으나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으니 딱 좋다.

당황함과 불안함이 가득한 그 얼굴을 향해, 바쿠고는 얼굴을 가까이 했다.


"야, 쟤 말고 내 고백에 먼저 대답해. 너, 나랑 연애할 생각 있냐?"



얼랭이의 대답을 들은 사람은 바쿠고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지만,  모두들 그 고백에 대답이 어떻게 되었는 진 알 수 있었다.

얼랭이에게 바쿠고가 고백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정작 그 당사자는 얼굴만 붉힐 뿐 아니라고 말한 적은 없기 때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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