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같은반 학생이라고 여겼었다.

'같은 반 친구'라는 말을 하기엔, 마츠자카 잇세이는 그녀를 몰랐다. 밑에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반에서 그녀가 누구와 친한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그런 사소한 것 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접점이라곤 같은 반인 것 뿐인 흐릿한 사람. 마츠자카 잇세이에게 얼랭이는 자신의 반에 인원수를 채우는 학생일 뿐이였다.

 

싫은 것도 아니였고, 좋은 것도 아니였다.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의식조차 하지 않는 사이. 

 

 

그러나 그녀를 몰랐던 오랜시간이 우스울만큼, 그 존재가 눈에 들어온 건 한 순간이였다.

 

 

방과 후, 마츠카와는 연습을 위해 체육관에 남아있었다. 이상하게 부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창고에서 꺼낸 공을 만지작 거리고 있으면 누군가 놓고간 옷 한벌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재차 확인하며 그것을 들어본다. 학교 체육복이였으나 딱 봐도 작아보이는 그 크기는 여학생용이였다. 부원이 놓고간 옷이라곤 볼 수 없다. 체육수업 때 여학생 중 누군가가 잃어버린 걸까?

 

“그거 내 옷이야.”

 

갑자기 뒤에서 낯선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츠카와가 놀라 고개를 돌리면, 생소하면서도 묘하게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본 적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여자아이다. 얼떨한 마츠카와의 표정은 그녀를 모른다고 똑똑히 써 있었다. 그러나 소녀는 마츠카와를 향해 빙긋 웃을 뿐이였다.

 

“같은 반이야.”

“어?”

“너랑 나 같은 반이라구.”

 

마츠카와의 손에 들려있던 체육복을 가져가며 그녀가 말했다. 소년은 그제서야 그녀가 누군지 깨달았다.

마츠카와 잇세이는 본디 타인에게 무심한 성격이 아니였다. 보통 학생이면 대화를 해본 적 없는 아이도 5월 즈음엔 그 존재를 외운다. 마츠카와도 그 중 하나였다. 다만 묘하게 얼랭이는 기억에 남지 않았었다. 소년이 얼굴에 머쓱함을 씌우면 얼랭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해 할 거 없어. 원래 애들이 날 잘 기억 못하거든.”

 

그녀는 익숙한 듯 무덤덤하게 말했다. 확실히 눈에 띄는 특징이 없는 아이였다. 마츠카와는 그 말에 미안했던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나 그거 만져봐도 돼?"

"뭐?"

"배구공 말야."

 

살갑게 말을 거는 얼랭이는 소년이 옆구리에 끼워놓은 배구공을 가리켰다. 그는 조용히 배구공을 건네주었다. 얼랭이는 이리저리 그것을 만져보며 흠, 하고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심드렁한 그 소리와는 달리 표정은 꽤나 즐거워 보였다.

 

"배구공은 처음 만져봐."

"그, 그래?"

"축구공이나 농구공하곤 느낌이 많이 다르네."

 

마츠카와가 양 손안에서 배구공을 돌려보는 얼랭이에게 시선을 맞추면, 공에 집중되어 있던 눈동자가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았다. 마츠카와는 저도모르게 시선을 피해버렸다.

 

“나 이만 가야겠다. 안녕.”

 

아무말 없이 자신을 쳐다보는 얼랭이는 싱겁게 작별인사를 남기곤 떠나버렸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였는데, 그것은 단순한 착각인 듯 했다. 그저 남과 대화할 때 똑바로 눈을 쳐다보는 습관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마츠카와도 곧 그녀를 잊고 얼마지나지 않아 나타난 부원들을 반겼다.

 

 

 

 

“연습 중이야?”

 

그렇게 얼랭이에 대해서 잊어갈 때쯤 만남은 갑작스레 다시 찾아왔다.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있던 도중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느낌이 들어 뒤 돌아보면 얼랭이가 서있었다. 마츠카와는 체육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마츠카와의 짧은 대답을 들으며 얼랭이는 그의 옆에 서서 수도꼭지를 틀었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 손은 군더더기 흙이 묻어있었다. 뭘하느라 저렇게 흙투성이가 된걸까? 조용히 손을 씻던 얼랭이를 향해 마츠카와가 질문을 던지면, 그녀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마치 마츠카와가 자신에 대해서 물어볼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정이였다.

 

“음...나 원예부거든.”

“왜 장갑을 안 끼고 해? 손 다치잖아.”

“어...그게...장갑이 다 떨어져서. 1학년이나 2학년은 아직 서툴러서 다칠수도 있으니까 그냥 내가 맨손으로 한다 했어.”

“고문 선생님껜 말씀 드렸어?”

“응...곧 가지고 오신대.”

 

그 말을 끝으로 얼랭이는 입을 다물었다. 묘하게 자신을 피하는 분위기에 마츠카와도 더 이상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체육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얼랭이가 자신에게 거리낌 없이 말을 걸고, 그는 당황해했지. 어째서인지 이번엔 반대가 되어버렸다.

 

“저......마츠카와는 잘 몰랐는데 사교성이 좋네.”

“어?”

“그냥, 잘 모르는 애한테 선뜻 말도 걸고 그래서...좀 더 과묵한 성격인 줄 알았거든.”

 

물론 아무하고나 수다를 떨만큼 친화력이 좋은 건 아니지만 그렇게 무뚝뚝하지도 않았다. 계절은 벌써 봄을 지나 여름을 향해 달리는 데,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둘은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마츠카와는 얼랭이의 말을 되받아 쳤다.

 

“너야말로, 난 네가 낯가리는 성격인 줄 알았어.”

“응? 나 낯가리는 타입이야. 모르는 남자애한텐 말도 잘 못거는 걸.”

 

얼랭이는 마츠카와의 말에 반박하였다. 소심한 성격이라고 그녀를 오해한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생각이 오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그 때, 얼랭이는 자신에게 살갑게 다가왔다. 자신과 얼랭이는 눈빛 한번 섞어본 적 없는 사이이다. 그런데 왜 그녀는 먼저 마츠카와에게 다가간 걸까?

 

“마츠카와는 날 잘 모르겠지만 난 너 알고 있었어. 눈에 띄잖아.”

 

얼랭이는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이라면 조금 납득이 간다. 신장이 큰 탓에 그는 어딜가나 시선을 받긴 했었다. 부드러운 성격에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에 녹아들긴 했지만, 대부분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다.

 

“음...그냥, 처음봤을 때부터 계속 네가 내 눈에 띄었어. 아, 역시 키가 커서 그런가?””

 

그녀는 스스로 납득을 하며 몸을 돌려 손을 털었다. 그러곤 이만 늦었다며 훌쩍 가버리는 그녀를 보며, 마츠카와는 얼랭이가 나타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얼랭이와 보냈던 시간은 묘하게 인상에 남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결국 평범한 것이였다. 이대로 얼랭이도 마츠카와도 서로에 대한 것을 바로 잊어버릴 만큼. 마츠카와는 아마도 두 번다시 그녀와 그 때와 같이 대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관심사도, 무리도 맞지 않으니까.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얼랭이를 잊고 살던 나날 중 그는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읽고있던 그녀를 발견했다. 그는 얼랭이를 보며 그제서야 그녀의 존재를 떠올렸다. 손에 들린 책의 표지를 보고 있으면 갑작스레 얼랭이와 눈이 마주쳤지만 그녀는 다시 시선을 책으로 옮겼다. 뭐, 같은 반 친구라고 반드시 살갑게 인사해야 할 필욘 없으니 그도 얼랭이의 시큰둥한 반응을 받아들였다. 근처에 있는 책장 옆에 다가가 제목들을 훑고 있으면 등 뒤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등을 돌려 주변을 확인하자 책을 내려놓은 채 자신을 바라보던 얼랭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안녕.'


소리를 죽이며 조그맣게 인사를 하는 그녀의 입술은 천천히 눈과 함께 휘어졌다.

그 순간, 마츠카와는 세상이 숨을 멈추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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